• Soo Yon Ryu

Half-Fifty.

93년생인 저는 2017년에 한국 나이로 25세를 맞이했어요.

(25세 처럼씨, 5세 아동들과 취향 잘 맞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때의 기억은 물론, 기억을 넘어 구체적인 사건들과, 그 사건들 속에서 느꼈던 미세한 감정까지도 생생한데..

어느새 20대 중반이라는 묵직한 이름을 달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들을 겪고 있는 저를 발견했지요.

세상의 흐름 속에 구애 받지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되돌아보니 저는 착실하게 그 틀 속에서의 과정들을 밟아온 것 같아요.

성실히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고, 짧지만 일도 참 열심히 했고, 이제는 또 다른 이름의 학생 신분으로 지내고 있으니까요.

올해 제게 주변 사람들은 '반-오십'이라는 단어를 많이 붙였고, 언젠가부터는 저도 자연스레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 반-오십의 끄트머리에 조용히 앉아, 지난 한 해, 그리고 그 한 해 뒤에 축적된 20여 년의 나를 돌아보고 싶어요.

어쩌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지만, 이 블로그에는 이미 저에 대한 이야기가 놀라울만치 많기에,

나의 오랜 친구와도 같은 이웃님에게 전하는 장황한 안부라고 여겨주셔도 좋아요 : )

1. 반-오십의 일상 (feat. 나혼자산다)

요즘의 저는 학교 근처의 작은 집에 살고 있어요.

치안도 좋지 않고, 분위기도 조금은 삭막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은 동네에요.

이 곳에서 얻은 작은 방에 크림색 벽지를 새로 도배하고, 노란 조명을 달고, 말린 꽃들과 잡다하고 예쁜 것들을 들여 놓았어요.

(어제 마신 복숭아 소다, 말린 안개꽃을 꽂았어요)​

아침에는 따끈해진 공기 속에서 게으르게 일어나요. 냉동에서 토스트를 꺼내 후라이팬에 구워, 땅콩버터나 잼이나 생크림을 얹어 먹어요.

밤새 밀린 인스타 피드를 보며 건조한 빵을 씹어요. (요즘은 인스타를 꽤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 @ryusu_ 에서 만나요오-!)

아주 게으른 페이스로,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해요. 익숙한 거울 속 내 얼굴과 눈을 마주하며 빠르게 씻고 나와요.

옷은 편하게 입고, 화장은 가볍게 하고, 학교로 나서지요. 학교에서는 수업을 듣고,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의 무지에 좌절해요.

그렇게 학교에서 돌아오면, 준비하던 과정들을 되감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하루를 마무리 해요.

(최근에 방을 따뜻하게 해준 작은 조명들)​

작은 집이지만, 거울은 큰게 있어 별 생각없이 거울을 빤히 보는 시간들이 생겨요.

그렇게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고등학생 때 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걱정 하나가 떠올라요.

그때는 저는 저의 얼굴을 '이해'할 수 없어 갑갑해했어요. 나는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말하는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나의 모습을 잘 알지 못했기에,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정성스레 꾸몄고, 그 과정을 즐겼고, 그 결과물을 기록하고 공유하곤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신기하게도 저의 얼굴과 표정과 몸짓을 알겠어요. 25년만에야 나에게 적응을 한 것 같아요.

(오늘 아침, 샤워 후에 찍은 본격 얼굴사진)

요즘은 '나'로 사는게 편하고,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무엇보다- 좋아요.

최근 들어 부쩍 '나'와 친해진 느낌을 받아요. 나를 더 이해하고 싶고,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내년부터는 조금 부족했던 나에 대한 사랑을 좀 더 많이 실현하고 싶어요.

반-오십이라는 약간의 압박 속에서 이룬 저만의 큰 성취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2.반-오십의 도전

사실 저번주까지만 해도, 올해의 성과에 대해 자책하며 몇날 며칠을 펑펑 울었어요.

길을 찾은 것 같았는데 그속에도 또 다시 방향을 잃었고, 뒷걸음을 치려고도 했고 도망가려고도 했어요.

매년 한 해의 끝에서, 올해 참 열심히 살았다, 많이 이루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안아줄 수 있었는데,

올해는 이룬 것도, 열심히 산 부분도 없다고 느껴졌거든요.

며칠을 잡고 천천히 되돌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무척 감사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의 이름은 류-수-연이에요. 버들 류, 받을 수, 이을 연, 즉 받아서 잇는다는 뜻의 이름을 갖고 태어났어요.

올해는 제가 무엇을 받고 무엇을 이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름대로 독특한 배경의 삶과, 세심한 가족과 친구들 틈에서 살았고, 그 속에서 고유한 저를 만들어나간 것 같아요.

'이을 연'이 들어가는 자리에 제가 잇고 싶은 여러 것들을 덧붙여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전개했어요.

그렇게 사진을 담는 '류수튜디오', 그림을 담는 '류수케치', 그리고 공작품을 담는 '류수토어'를 만들었어요.

이 컨텐츠들은 역시나 열심히 하는 인스타그램에서 ryusu_tudio, ryusu_ketch, ryusu_tore에서 볼 수 있어요 : )

(싱어송라이터 칼리아 언니를 내 시선으로 담았던 날)​

'류수튜디오'에서는 저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담으려고 했어요.

풍경사진보다 인물사진을 좋아하고, 필름사진보다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진가들은 미용보정은 둘째치고 색감보정도 진정한 사진예술에서는 불허하고는 하지만, 저는 사진의 조작이 좋아요.

(여행 중에 만난 조각)​

내가 보는 세상을 항상 카메라의 원래 사진대로 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 분위기도, 모습도요.

가령 인물 사진을 찍으면서는, 내가 보는 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으려 했고,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 또한 반영하려고 했어요.

자존감을 무사히 지켜나가기 어려운 사회에서, 사진에서만큼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더 가깝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웹사이트도 만들어 열심히 촬영을 했었는데, 일부 기능을 수정하다가 컴맹 인증이라도 하듯, 모든 자료를 삭제해버렸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도메인도 만료되어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사이트가 없어져버렸답니다... 핳ㅎ하핳.............

그나마 다행인건, 시간이 여의치 않아 요즘 촬영을 하지 못한다는 점(?!).

내년에는 계절에 한두번씩이라도 인물촬영을 간간히 하려고 해요. 저의 시선을 꾸준히 개발해가고 싶어요.

(나와 남자친구)​

'류수케치'에서는 주로 인물을 그리고 있어요.

최근에 한 이웃분이, 현재 그리는 그림들이 예전의 그림체로부터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기억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참 감사했고, 힘이 되었어요. 늘 그림을 좋아했고 블로그에서도 종종 올리곤 했지만, 스스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새해를 맞이하여 달력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러다가 어느날, 문구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현혹되어 집어온 물감과, 선물받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보니, 새로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날 약간의 충격을 받고 밤새 그림을 그렸어요. 7건의 그림을 완성하고 아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보여드렸죠.

아빠는 초등학생때 제가 그렸던 나비 그림을 어루만지시며 '실력이 퇴화했엉..' 이라며 슬퍼하셨지만, 저는 만족스러웠어요ㅎㅎㅎㅎ

그 이후로 '100명의 문화 아이콘'이라는 주제를 잡고, 제게 영향을 미쳤던 100명의 인물들을 인스타그램에 연재 중이에요.

이것이 끝나면 '100개의 전통 의복'을 그려 독립출판을 하고 싶어요.

제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취미를 다시 발견해 아주 기뻐요.

(물건들을 팔기 위해 참여한 작은 마켓에 나의 부스)​

'류수토어'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저는 늘 물건을 사랑했고, 그 물건들이 가진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행복했어요.

언젠가는 그런 물건들로 가득한 작은 가게를 가져야지, 하는 꿈을 항상 품고 있어요.

남자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지금이라도 작게 시작해보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자극을 받아 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지금은 제가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작은 물건들 (브로치, 귀걸이, 엽서 등), 그리고 빈티지와 에스닉 물건을 판매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단계이기에 미숙하기도 하고 그렇다할 수익이 나지는 않고 있어요.

하지만 전부터 꿈꾸었던 작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행복해요.

내년에는 빈티지와 에스닉 제품을 줄이고, 저의 그림으로 만든 굿즈와 작은 공예품 (손으로 만든 가방 등) 으로만 도전하려고 해요.

목표로 해놓은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작은 작업실 겸 쇼룸을 얻어 하루 공부를 마친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에 운영을 해보고 싶어요.

(후리하게 작업 중인 처럼씨)​

취미 두개와 그것을 물건의 형태로 전달하는 작은 사업체를 조금씩 다져나가고 있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현재로서 제가 세상으로부터 '받아', 저의 시선으로 '잇고' 있는 것들이랍니다: )

3.반-오십의 관심

​이전부터 호기심이 많고, 많은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두었는데,

요즘은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관심사가 제법 선명해진 것을 느껴요.

또한 그 관심사들을 탐색해가며 저의 가치관이나 입장 역시 정리가 되어가는 것을 보았어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그린 diversity santas)​​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가진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을 표출하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움직이는 소비자 행동 연구에 마음을 두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해보려 해요. 알맞게도 연세대학교에서 문화디자인경영과 경영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미술경영을 공부하고 있어요. ​ ​

​ 대학원을 준비하며 정보가 부족하기도 했고, 대학원 진학 후에 관심사가 좀 더 정제되며, 현재 전공과 완벽한 핏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제가 얻을 것도 배울 것도 많은 곳이기에 남은 두 학기 동안 (벌써 두 학기가 끝나가요!) 열심히 공부해보려 해요. 이곳에서의 수학을 마친 후에는 미국에서 소비자행동 분야로 박사진학을 희망하고 있어요. 아직 갈 길이 멀고, 실력이 많이 부족해요. 그만큼 이곳에 저의 포부를 공유하며 마음을 다잡아보아요. 4.반-오십의 꿈 ​ 얼마 전에 친구가, 저의 꿈이 무엇인지를 묻더라고요. 제 마음 속에서는 이미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있었는지, 답이 어려지 않게 나왔어요. 저는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고, 나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첫번째는 어쩌면 늘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리고 고유한 내가 아닌 '동양인 여성'으로 구분지어지며 생긴 열망일지도 몰라요. 더 빠르고 촘촘하게 연결되어가는 세계이지만, 그만큼 심리적 거리는 계속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대체불가능한 고유한 나로서 이해되고 기억되고 싶어요. 그렇기에 저는 저와 더 친해져야 하고 스스로를 사랑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요! 또한, 위의 구체적인 관심사 외에도, 저는 소수자로 살아왔던 날들이 긴만큼, 인권과 평등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저는 일종의 '확성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더 크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의 영향력을 키워야 하고 그 영향력이 선하고 신뢰할 수 있을만한 것이어야 겠죠.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할 수 있을 것 같고,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저만의 세계를 갖고 싶어요. 다시 말해, 제가 '받는' 것들을 소화하고, 내것으로 만들어 나만의 형태로 해석하여 '잇는' 일이에요. 내가 만든 세계는 좀 더 따뜻하고 평화로웠으면 좋겠고,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지혜롭고 현명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 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살아보려고 해요. ​
​ 이런 꿈들을 이루는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목표라면 결혼과 임용과 가게 내기에요.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와 올해부터 연인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아주 따뜻하고 현명한 친구에요. 업다운이 심한 저를 잘 잡아주고, 욕심이 많은 저를 응원해주고, 저 역시 그 친구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용기를 주어요. 이 친구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어, 처음해보는 국제 장거리 연애에 사실 많이 힘들고 외롭기도 하지만, 어느때보다 좋아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 버텨, 머지 않은 미래에 둘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 ) 그리고 그 버팀목으로 관심 분야에 매진하여 공부를 마친 후 임용이 되고 싶고.. (제발!), 남자친구(혹은 남편!)과 함께 퇴근 후와 주말에 운영할 수 있는 작고 예쁜 가게를 열고 싶어요. 바닥에 잔디를 깔고 벽에 테피스트리를 건 볕 잘 드는 곳에서, 저는 창작품을 팔고 이 친구는 라멘을 파는, 그런 그림을 그려보아요. 그러기 위해서 요즘은 생민하게 살기 위해 나름 노력중...이고..... (오늘도 카페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 간 나, 그뤠잇!) 장단기 목표를 세워 느리지만 성실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늘 그랬듯이 짧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참 장황하게 써놓았어요. 요즘 제 마음과 머리 속을 채운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풀어놓았고, 풀어 놓는 과정에서 저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
​ 사실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고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동네로 오며, 가족과 친구와 연인 모두에게서 물리적으로 멀어져버리며, 많이 외로웠어요. 어떤 밤들은 너무 외로워 잠이 오지 않았고, 어떤 날들은 길을 가다가도 별안간 눈물이 툭 떨어지곤 했어요. 그럴때마다 기적과도 같이,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이웃분들이 사르르 나타나주었고, 아주, 아주 큰 힘이 되었어요.
(블로그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만난 인연) 반-오십의 저는,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것만큼 능력이 있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더 큰 이상향을 좇아 앞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지만, 그 걸음이 무겁고 더딜때면 그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오곤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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